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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월애 후기 — 여백의 영화, 그리고 태풍에 사라진 석모도 일마레

    시월애 후기 — 여백의 영화, 그리고 태풍에 사라진 석모도 일마레

    ※ 이 글은 영화 결말을 포함합니다.

    요즘 옛날 아이폰을 일부러 사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절 색감이 난다고. 시월애를 다시 보고 나서야 그 마음을 알았다.

    처음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영화다. 그래서 오늘 다시 봤다.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감성과 추억이 다시 떠오를 거고, 젊은 분들이라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때만의 감성이 가득한 영화로 봐주시면 좋겠다.

    영화 정보

    • 감독: 이현승
    • 주연: 이정재(성현), 전지현(은주)
    • 개봉: 2000년 9월 9일
    • 상영시간: 91분

    바닷가 집 ‘일마레’의 우체통으로 2년의 시간을 건너 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이야기. 1999년 집을 떠나는 은주가 다음 세입자에게 편지를 남기고, 1997년 그 집에 들어온 성현이 그 편지를 받는다. 같은 해 봄에는 무전기로 1979년과 대화하는 ‘동감’이 나왔다. 2000년은 시간을 건너 소통하는 멜로가 두 편 나온 해다.

    첫 장면부터 필름 감성, 일마레에서 편지 쓰는 전지현

    첫 장면, 전지현이 일마레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 그 한 장면에서 벌써 옛날 필름의 감성이 물씬 느껴졌다.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리즈 시절과 필름 감성, 이 두 가지 때문에 추억과 감성이 더 올라갔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유치한 장면이 눈에 밟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영화 탓이 아니라 26년이 지난 탓이다.

    ⓒ 영화 ‘시월애’ 스틸컷

    여백이 많은 영화, 편지 한 장에 하루 하루 하루

    공간에 혼자 있지만 편지에서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인지 홀로 있는 장면인데 보는 나까지 편안해진다.

    시간의 여백도 많다. 30분쯤 지나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편지 한 장을 보내고 하루, 답장을 받고 하루, 다시 보내고 하루. 하루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게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이라면 카톡 몇 번이면 끝날 대화다.

    천천히 서로의 편지를 읽고 서서히 스며드는 감정,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었다.

    ⓒ 영화 ‘시월애’ 스틸컷

    서로의 하루를 대신 살아주다

    1시간쯤 지난 지점, 두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하루를 편지로 알려준다. 은주는 놀이공원에 가서 이렇게 즐기고 저렇게 보낸다고 순서대로 적어 보내고, 성현은 그걸 그대로 따라 한다. 반대로 성현이 보낸 하루를 은주가 그대로 따라 한다.

    외로울 때 위로받으려고 하는 하루를 서로 바꿔서 살아주는 장면이다. 행동은 그 배우가 하는데 목소리는 상대 배우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남는 장면이었다.

    당신이라면 상대에게 어떤 하루를 편지로 보내겠는가.

    한 사람만 행복한 결말

    화면은 두 사람이 만나는 걸로 끝난다. 그런데 나는 이걸 반 해피엔딩으로 봤다.

    영화는 첫 장면으로 돌아가서 끝난다. 은주가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이삿짐센터 분이 짐을 들어준다. 같은 날, 같은 옷, 같은 편지. 그리고 짐을 들고 나오는 순간 성현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성현을 만나는 은주는 아직 편지를 한 통도 못 받은 은주다. 2년 치 편지를 읽고, 옛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성현이 사고로 죽었다는 걸 알고, 그를 살려낸 은주는 화면에서 사라진다. 과거의 두 사람은 행복해졌지만, 그 시간을 다 겪은 은주는 혼자 남는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쉽다.

    이건 내 해석이다. 당신은 이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봤나요?

    ⓒ 영화 ‘시월애’ 포스터 — 일마레

    일마레는 태풍에 쓸려갔다, 촬영지 강화 석모도

    극중 배경: 바닷가 집 ‘일마레’
    실제 촬영지: 인천 강화군 석모도 하리 선착장 부근 바닷가 (세트, 현재 없음)

    일마레는 세트였다. 촬영 뒤 한동안 관광객이 찾아왔지만, 개봉 2년 만인 2002년 태풍 루사에 쓸려가 지금은 흔적이 없다. 여러 자료에서 같은 얘기를 하고, 강화군청에 아직도 촬영지 문의 전화가 온다는 글도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달동네는 재개발이 지웠고, 시월애의 집은 태풍이 지웠다. 시간을 건너는 영화인데, 그 집도 시간에 쓸려갔다.

    검색하면 민머루 해변이 촬영지처럼 나오는데, 내가 확인한 자료로는 세트 자리는 민머루가 아니라 하리 선착장 쪽이다. 지금 그 자리는 양식장이라 영화 분위기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한다. 대신 석모도에서 영화 속 그 석양을 보고 싶으면 민머루 해변이 답이다.

    참고로 이 영화는 2006년 할리우드에서 ‘레이크 하우스’로 리메이크됐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로 간 초기 사례다.

    방문 정보

    • 세트 터: 인천 강화군 삼산면 하리 선착장 일대 (볼 것 없음, 양식장)
    • 대신 갈 곳: 민머루해수욕장 — 인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872, 백사장 약 1km, 서해 석양·갯벌체험
    • 가는 길: 강화대교 → 48번 지방도 → 석모대교(2017년 개통, 배 안 탐) → 민머루, 석모대교에서 차로 20분 안팎
    • 문의: 강화군 문화관광 · 강화군 자연휴양림 주변관광 안내

    방문 정보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