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본 8월의 크리스마스는 풋풋한 사랑의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영화 첫 장면에 내 국민학교 운동장이 있었다. 서울 변두리로 나오는 이 동네는, 사실 거의 전부 군산에서 찍었다.
이 글에서 볼 것
- 영화 이야기 — 흙 운동장의 타이어, 그리고 천둥 치는 밤 아버지 옆에 누운 정원
- 촬영지 — 서울 변두리 사진관이 군산에 있는 이유, 차고를 고쳐 만든 초원사진관
- 방문 정보 — 무료 관람, 이름 말고 주소로 찍어야 하는 이유, 30분 안에 들를 곳

영화 정보
- 감독: 허진호 (장편 데뷔작)
- 주연: 한석규, 심은하 (신구·오지혜·이한위)
- 개봉: 1998년 1월 24일 / 97분 / 15세 관람가 (2013년 11월 재개봉)
- 촬영: (故)유영길
- 청룡영화상 작품상·여우주연상(심은하)·촬영상·신인감독상
한 줄 소개: 죽음을 앞둔 사진사가 끝내 고백하지 않은 여름의 사랑.
서울 변두리에서 사진관을 하는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아버지(신구)와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여름, 단속 차량 사진을 뽑으러 온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이 사진관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정원은 끝내 자기 병을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촬영을 맡은 고(故) 유영길 촬영감독은 개봉 8일 전인 1998년 1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완성본을 보지 못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흙 운동장의 타이어, 국민학교의 기억
나는 이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고,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초반에 보이는 장면들에서 바로 감성에 젖어 들어 버렸다.
특히 첫 장면의 초등학교다. 넓은 흙 운동장, 땅속에 반쯤 박혀 있는 타이어, 그리고 운동장 테두리의 철봉. 거기 매달려 놀던 기억이 영화 속 장면과 정확하게 겹쳐졌다.

개봉했을 때 본 기억은 풋풋한 사랑의 안타까움이었다. 나이가 들어 다시 본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 속 세계를 살아온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보는 내내 하나하나가 다 과거의 추억이었다.
주차단속원과 사진관 사장
다림은 단속한 차량 사진을 뽑으러 사진관에 온다. 주차단속원과 사진관 사장, 일로 엮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이다.

바쁘고 치이는 일상 속에서, 다림은 안정감 있어 보이는 정원에게 점점 빠져 들어간다. 심은하는 이 다림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천둥 치는 밤, 아버지 옆에 누운 정원
죽음이 다가오는 하루하루. 천둥이 치는 밤, 정원은 잠을 설친다. 불을 켜고 다시 잠들려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 정원은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으로 가서 옆에 눕는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 왜 그랬을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 앞에서, 아이처럼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어서 같이 잔 게 아닐까. 어릴 때 천둥이 치면 부모님 방으로 가던 것처럼.
결말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버렸다
정원의 죽음은 결말이라기보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시간이 흘러버린 느낌이었다. 나도 영화가 더 이어지기를 바랐다. 이렇게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요즘 영화와 다르게 그냥 편안하게 보게 되는 영화였다. 비슷한 세대를 살아와서인지 감독의 의도를 따지지 않아도 그냥 볼 수 있었다. 보이는 장면 장면을 즐기면서 보았다.
CG 없던 시절, 진짜 장소에서 찍은 영화
예전에는 CG가 없으니 촬영지에 직접 가서 영화를 찍었다. 그래서 그 시절 영화에는 아름다운 배경이, CG나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장소가 담겨 있었다.
요즘 영화는 화려한 이미지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을 보여준다. 재미는 있다. 하지만 볼 때만 재밌고, 감성과 추억은 줄어든 것 같다.
촬영지가 사라져 가는 지금, 영화 속 장소들이 초원사진관처럼 추억 속 사진관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쉽다. 추억은 흐려져도, 초원사진관은 그것을 기억으로 아름답게 현상해 두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서울 변두리 사진관은 군산에 있다
영화 속 배경은 서울 변두리지만, 촬영은 거의 전부 군산 월명동 일대에서 했다. 정원의 집과 초등학교 등 대부분의 장면을 초원사진관 근처에서 찍었다고 군산시는 설명한다.

초원사진관은 원래 차고였다. 제작진은 세트를 쓰지 않기로 하고 전국의 사진관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쉬러 들어간 카페 창밖으로, 여름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차고를 발견해 사진관으로 고쳤다.
‘초원’이라는 이름은 한석규가 지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 사진관의 이름이라고 한다. 진짜 사진관이 새로 생긴 줄 알고 찾아온 사람도 많아서, 영화 속 가족사진 손님 가운데 일부는 실제 방문객이었다.
크리스마스 장면의 눈은 가짜다. 촬영이 11월 말이라 솜을 깔고 소금을 뿌렸는데, 촬영이 끝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 소금을 김장용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사진관은 촬영 뒤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됐다. 그 사진관을 군산시가 다시 복원했다. 사라졌던 장소가 다시 현상된 셈이다.
영화 첫 장면의 초등학교는 근처 군산서초등학교로 알려져 있다. 운동장에 촬영 기념 안내판이 있다고 한다.
초원사진관 방문 정보
- 극중 배경: 서울 변두리의 작은 사진관
- 실제 촬영지: 전북 군산 월명동 일대 (초원사진관, 월명공원)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영2길 12-1
- 관람시간: 월요일 9:00~18:00 / 화~일요일 9:00~21:30
- 휴관: 연중무휴
- 입장료: 무료
- 안에서 볼 것: 영화에 나온 사진기, 선풍기, 앨범
- 주차: 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서 도는 게 편하다
내비게이션에는 이름 말고 주소로 찍자. 군산에는 영화와 관계없는 ‘초원사진관’이 따로 있다.
초원사진관에서 30분 안에 들를 곳
-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류층 주택으로, 여러 영화의 촬영 명소다. 사진관 바로 옆 골목이라 가장 먼저 들르기 좋다.
- 동국사 — 몇 남지 않은 일본식 사찰이다. 경내에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1930년대 군산 거리를 재현한 전시가 볼만하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길을 건너면 바로 근대골목이 시작된다.
- 경암동 철길마을 — 70년대 판잣집과 창고가 철길을 따라 붙어 있는 곳이다. 원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차로 가는 게 편하다. 주민이 사는 곳이니 조용히 둘러보자.
나는 아직 초원사진관에 가 보지 못했다. 다녀오면 직접 찍은 사진을 더하겠다.
방문 정보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확인하자.
천둥 치는 밤 아버지 옆에 누운 정원, 혹시 다르게 느끼신 분도 계실까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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